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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시애틀 삶/산 이야기

별난 시애틀

by 산꾼 A 2024. 5. 2.

별난 시애틀은 한마디로 '극적'인 것 같습니다. 워싱턴 주의 도시들이 살기 좋은 곳에 선정되기도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도 이름을 올립니다. 별난 통계와 그 뒷이야기입니다.

 

Herman Saddle

* 시애틀을 이해하는 열쇠, 도로 웅덩이와 취미생활

'도로 웅덩이와 취미생활이 열쇠'라니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지금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냥 "시애틀에 비가 많이 와요."라고 하면, 비가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오는지, 비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워싱턴 주 도로에는 웅덩이 파인 곳이 많습니다. 도로상태가 미국에서 최악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곳 날씨를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일 년에 비 오는 날만 5개월쯤 되니, 그것도 겨울철에 거의 매일같이, 어떨 때는 일주일 내내 끈질기게 비가 오니 도로가 멀쩡할 수가 없겠지요.

 

이상한 게 비가 그렇게 와도 우산 쓰고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고, 비가 오는 듯 마는듯하는 안개비라서 강수량도 깜짝 놀랄 만큼 많지는 않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조금 춥고, 잔뜩 흐린 날이 많고, 위도가 높아서 겨울철에는 해마저 짧습니다. 제 산행기를 보면 대부분 잿빛하늘이고, 빛이 좋지 않아 사진이 그저 그렇습니다. 물론 실력 탓이지만, 그나마 비 안 오는 곳을 찾아다닌 것입니다.

그리고, 시애틀은 커피와 테리야끼 (고기를 그릴에 구운 음식)가 유명합니다. 커피는 스타벅스 본사가 있는 곳이라서 그렇다 쳐도, 테리야끼는 타주에서는 장사가 시원치 않고 워싱턴 주에 맞춤형 음식 같습니다. 비 오는 날 부침개처럼, 미국인들 입맛에는 날이 궂으면 아마도 커피와 고기가 당기나 봅니다.

 

어떤 사장님이 열공을 하고 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심리학 공부를 하는데, 워싱턴 주에 우울증 환자가 많다."라고 합니다. 우울증이란 말이 뜻밖이었지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카지노, 술 등으로 심하게 망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저만해도 비가 오면 집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는 합니다. 

겨울철 우중충한 날씨가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이사 온 거래처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워싱턴 주에 살면서는 뭐든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 같습니다."라고 잘난 척을 했습니다. 뭐라도 집중하면, 망가지지 않고 사는데 도움이 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여름철에는 날씨가 말도 안 되게 좋습니다. 덥지도 않고, 습도가 낮아 뽀송뽀송하고,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옵니다. 더구나 위도가 높아서 여름철에는 해가 길어, 산행을 마쳐도 해 떨어지려면 한참 남았습니다. 누군가는 '천국의 날씨'라고 하고, 미국인들이 손꼽는 여름 휴가지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쨍한 여름철에도 산불연기가 덮치면 공기질이 최악이 되기도 합니다. 

워싱턴 주 날씨가 아주 '극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Columbia Hills

* 교회 땡땡이

워싱턴 주가 미국에서 교회 땡땡이 많이 치기로 유명하다네요. 

왜?

(변명 1 : "높은 산에 올라 가까이서 모신다.")

 

놀기 좋고, 갈 곳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시애틀에서 IT에 종사하는 분들 (비교적 소득이 높고 똘똘한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니, 워싱턴 주가 '엄지 척'입니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주변에 갈 곳이 많아도 너무 많고 (평생을 다녀도 못 다닐 만큼), 놀꺼리도 넘칩니다.

취미들도 다양해서 조개 잡는 사람부터 계절직업 삼아 송이버섯, 고사리를 채취하는 분도 있습니다. 산행만 해도, 등산로 없는 험한 산에서 암벽, 빙하를 오르는 진짜 산꾼부터, 힘들어 헉헉대면서 좋다고 다니는 무늬는 산꾼 (제 이야기네요 ㅎㅎ)도 있습니다. 하다못해 동네공원도 숲이 만만치 않게 좋아서,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미국 살면서 엄청 싸돌아 다녔네요. 어떤 해는 차로 거의 지구 한 바퀴만큼의 거리를 다녔고, 미국을 2번 횡단하였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워싱턴 주입니다. 

 

 

Skyline Divide

* 개가 사람보다 많다네요 

미국이민 와서 처음에는 워싱턴 주 분들이 무지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대로 잘 몰랐습니다. 엄청나게 뚱뚱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웬만하면 놀라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걸음걸이부터 말하는 속도까지 빠른 뉴욕에 살다 다시 워싱턴 주로 돌아와서 보니, '넋 나간 사람' 같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여유 있고, 느긋하고, 동양인에게 관대하고, 이런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살면서 보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Seattle Freeze"라는 말이 있습니다.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가까이하기 쉽지 않은 시애틀 사람들을 표현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그런가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집에서 개를 키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여튼 개가 사람보다 많다고 합니다.

 

이것도 벌써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IT 관련해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코로나를 겪으면서 분위기가 전혀 달라졌습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도로에서 경적소리 듣기가 힘들었는데, 요즘은 경적, 칼치기는 금방 익숙해집니다. 이민 초기만 해도 치안이 안전해서 어린 학생들도 꽤 유학을 왔던 것 같은데, 점점 그런 상황을 기대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시애틀의 어떤 점포에는 세 달 동안 다섯 번이나 도둑이 들었다 하고, 총기사고도 빈번합니다. 시애틀이나 에버렛 시내로 가면 좀비처럼 얼어버린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고, 보도에 노숙자 텐트가 있기도 합니다. 텐트를 철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떤 곳에는 가설 화장실을 설치할 정도로 노숙자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몰리고 도시가 커지면서, 느긋하던 사람들이 쌩쌩 달리는 쪽으로, 도시 분위기가 '극적'으로 변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민족이 모여사는 미국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제가 느끼는 도시 분위기를 전하고자 했으나, 이마저도 경험이 충분치 않아 단편적일  수 있습니다. 

 

 

Amazon

* 절망과 희망사이

시애틀이 과거 "절망의 도시" 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잘 모르겠고, 제가 두 번째 미국을 방문했던 2000년쯤에만 해도 집값이 비싸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생이 Renton에 살았는데, 보잉에서 대량해고 하면서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뒤에도 닷컴기업이 붕괴되면서 시애틀에 빈 사무실이 넘쳤고, 경기가 썰렁했습니다.

 

최근에는 워싱턴 주에 본사가 있는 아마존, 마이크로 소프트, 코스코, 스타벅스 같은 큰 회사들이 버텨서, 젊은이들이 많이 유입되었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도시가 '극적'으로 바뀌는 중입니다. 지금도 새로 짖는 건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인구가면서 집값, 생활비는 왕창 오르고, 기름값은 타주평균보다 항상 비쌉니다. 또, 교통체증은 악명이 높습니다. 경전철이 추가로 개통되면 교통상황이 나아질까 싶은데, 공사비에 쓰겠다고 이런저런 세금도 늘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누가 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필요한 한 사람을 위해 마무리했습니다. 기사화된 통계를 인용하였고,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날씨, 도시, 사람들이 '극적'으로 변하는 별난 시애틀, 불편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더없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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